부르르, 몸을 떠는 휴대폰 화면에 익숙한 번호가 떠올랐다. 깜박이며 수신자를 알리는 휴대폰이 두 번의 진동 패턴을 반복한 뒤에야 전화기를 집어든 사사키가 급한 걸음으로 사무실을 벗어났다. 전화를 집어들기까진 많은 용기가 필요했지만, 막상 손안에 쥐고 나니 전화가 끊어질까 두렵기만 했다.

 사람이 없는 회백색 흡연실 문을 연 남자가 한 손으로 담배를 꺼내 물며 라이터의 불을 당겼다. 심호흡 대신 깊게 빨아들인 담배 연기를 뱉으며 통화 버튼을 누르자 기다렸다는 듯 상대방이 입을 열었다.

 

", 기자님. 유가족 분들께서 확인하고 가셨는데요... M 씨가 맞는 것 같답니다."

"...... ...그렇습니까. "

 

 간신히 대답하고 입에서 뗀 담배를 고쳐물었다. 필터 하나를 입으로 가져가는 게 어려워 몇 번 잘못 문 담배가 간신히 잇새에 끼워졌다. 그가 질문의 답을 찾지 못한 학생처럼 아둔하게 입을 다물고 있는 동안, 조급해진 상대가 먼저 말을 꺼냈다.

 

"M 씨가 기자님 회사 소속이셨다던데, 보복살인이면 말씀을 해 주셔야 수사에 진전이......"

 

 떠드는 남자의 목소리가 물에 잠긴 듯 점점 불분명하게 느껴졌다. 술 한 잔 마시지 않은 맑은 대낮인데도 두 발로 서 있기조차 힘에 부쳐 벽을 짚고 섰다. 반쯤 탄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남자가 창틀을 짚고 천천히 자리에 주저앉았다. 타들어가는 담배에서 떨어진 재가 바닥에 부딪혀도 풀어지지 않을 정도의 낮은 자세임에도 어쩐지 현기증이 느껴졌다.

 

"...연락 감사합니다. ...다음에 제가, ...연락 드리겠습니다. ......"

 

 더듬더듬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자 피우지도 못하고 타기만 한 담배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다. 바닥에 떨어진 꽁초가 희미한 연기를 피워올리고 덩그러니 떨어진 굽은 담배 위에 버려진 M의 굽은 몸이 겹쳐진다. 싹싹하게 웃던 M의 얼굴과 겁에 질린 M의 목소리가 뒤섞여 떠오르고, 속이 뒤집히는 느낌에 일어난 남자가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 주의 남자가 깨달은 사실은, 사람은 생각보다 튼튼해서 며칠 굶고 잠들지 않는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간 현장은 줄을 치고 바쁘게 오가던 관계자로 가득했다. 격앙된 목소리와 수런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어른거리는 검은 보관백의 긴 몸체가 보였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주위를 둘러싸 날카로워진 형사들은 좀처럼 사람들과 말을 섞지 않으려 했다.

 결국 남자가 선택한 방법은 인맥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지역 내에 안면을 튼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자 M과 사사키의 연관성을 알지 못한 상대가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식이 빠르시네요, 선생님. 자극적인 기사를 읊는 것처럼 심드렁한 어투였다.

 

"... 거 너무 자극적으로 쓰지 마요. 선생님은 알아서 하시겠지만, 이런 일이 생겨서 우리도 여간 복잡한 게 아니에요. 일단 선생님이시니까 전부 알려는 드리는데 적당히, 아시죠."

".... 말씀하세요."

 

 M에게서 연락이 끊긴지 반 년 후, 신원미상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말에 급히 달려간 현장이 심상치 않았다. 이 바닥에서 몇 년을 구르다 보면 곤두선 사람들의 얼굴로 사건의 크기를 짐작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 눈만 보고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표정이나 제스쳐를 통해 상대방의 호오나 사건의 심각성 정도는 얼추 가늠이 되는 터였다.

 현장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긴장되고 방어적인 제스쳐가 읽히는 건 이런 일에 익숙한 그라도 덩달아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발견된 신원 미상의 시체가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지금 같은 상황에선 더더욱.

 

"지문이고 얼굴이고 다 지져놨어요. 못 알아보게 하려고 했나 본데, 신원미상이라 이쪽에서도 조사 중이니 추측성 기사는 내지 마세요. 전신에 구타 흔적이 많고... 뭘 먼저 했는진 부검 후에 발표할 거예요. 직접적 사인은 뇌진탕이겠네요. 그나저나 선생님께서 살인사건 찾아보시는 건 오랜만이네요. 사건 냄새를 알아보시는 재주가 있으신가... 뉴스에서 한동안 난리겠어요. 이렇게 징그러운 놈도 간만입니다. 그리고 혀가, ......"

 

 남자가 뱉는 문장마다 하나하나 별개의 무게추가 되어 어깨를 짓눌렀다. ..., .... 감사합니다. 반사적인 대답을 하는 동안 귓전에서 웅웅대는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나잇대와 키가 일치했고, 옷차림과 헤어스타일도 일치했다. 만일을 기대하기엔 보복성으로 짐작되는 살인 방식과 발견 가능성이 높은 공터에 내다 버린 시체까지 감히 잠입을 시도한 M의 죽음을 전시하는 것만 같았다.

 

"저항 흔적이 있으니 면식범은 아닙니다. 상황 보시라고 쭉 불러드리는 거니 전부 기사로 내시면 곤란해요. 아시죠."

 

 새벽에 전화를 걸어 흐느끼던 M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껄껄 웃으며 안부를 묻는 상대에게 어설프기 짝이 없는 대답을 했고, 간신히 전화를 끊은 뒤엔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뭘 먼저 했는진 부검 후에 발표할 거예요. 머릿속에서 반복해서 적히는 문장을 피해 도망치듯 현장을 빠져나간 기억만이 어렴풋한 형태를 유지했다.

 

 

 

 

 

 하나 둘 사람들이 사라지고 소리가 줄어드는 새벽이면 지난 일이 떠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떠오르지 않아도 눈을 감으면 언제나 꿈속에선 소금기 섞인 물이 넘실거렸다. 죽은 사람도 꿈을 꿀 수 있다는 걸 깨달은지 열흘, M이 흘리는 눈물은 빠르게 차올라 어느새 그의 허리까지 올라와 있었다.

 눈을 뜬 지금 바닥에 물기 한 방울 남아 있지 않음에도 어쩐지 출렁이는 물의 수면이 시야를 가득 채운 느낌이 들었다. 가슴까지 차오른 물이 답답하게 숨을 막아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멀거니 침대에 앉아 있던 남자가 손에 쥔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밝게 불이 들어온 화면에 짧은 메시지가 떠 있다.

 

[ 죽게 만들고 나니까 기분이 좋았어? ]

 

 작은 메시지 칸에 깜박깜박, 검은색 커서가 반짝이며 답장을 적을 것을 종용했다. 화면의 조명이 한 단계 어두워지고, 곧 검게 암전될 때까지 아무것도 적지 못한다. 다시 전원 버튼을 눌러서 화면을 켜면 같은 문장이 파랗게 눈을 뜨고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반복한다. 세 번 정도.

 

"......아뇨, ..."

 

 곧은 등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천천히 앞으로 쓰러졌다.

 

"...... ......아뇨, ...아니에요, ......아니에요. ......"

 

 고개를 숙이자 수압에 눌린 귀가 먹먹하게 잠겨왔다.

푸른 물속에서 휴대폰을 움켜쥔 손끝만 희게 빛나고, 핏기 가신 손이 떨리는 모습은 부유하는 시체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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